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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노후는 '걱정'…본인 준비는 '뒷전'

중년층의 미래는 현 노년층의 오늘 삶이다. 본지의 연말기획 '한인사회 소외된 노년층' 10회 시리즈를 본 한인 중년층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LA지역 한인 중장년층(40세 이상 65세 미만) 88명에게 노후 준비를 얼마나,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질문했다. 대부분 자식을 키우고 부모를 부양하느라 노후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먹고살기 바빠 '외로움'은 뒷순위=노년이 다가오면서 걱정되는 점에 대해 묻자 응답자 84명 중 절반 이상인 44명(52.38%)이 '노화로 인한 건강 쇠퇴'를 꼽았다. 다음으로 30명(35.71%)이 '소득 감소로 인한 경제적 문제'가 걱정된다고 답했다. 반면 외로움을 걱정하는 응답자는 8명, 자존감 상실이 걱정된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2명으로 나타났다. 생존에 대한 고민이 앞서 심리적 문제에는 소홀한 모습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이기성(58세·가명)씨는 "자식들이 타주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종종 공허함을 느끼지만 먹고살기 바빠 금세 잃어버린다"면서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외로움은 숙명처럼 느껴진다"고 밝혔다. ▶노후준비 "경제가 가장 큰 부담"=중년층은 노후준비에 가장 큰 부담으로 경제를 꼽았다. 경제적 부담감을 느끼는 요인을 물었을 때 노후자금 부족이라고 답변한 비율이 39.02%(응답자 82명 중 32명)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는 생활비 부족이 34.15%(28명)를 차지했다. 높은 자녀의 양육비 및 교육비(17.07%, 14명)와 부모 노후생계비(7.32%, 6명)가 뒤를 이었다. 실제로 노후를 위해 저축이나 경제적 투자를 하는 비율도 82명 중 24명(29.27%)에 불과했다. 높은 생활비 및 가족 부양비로 인해 노후를 위한 저축과 투자를 할 여력이 없어 경제적 부담감을 느끼는 것으로 풀이된다. ▶부모는 당연히 부양·자식에게 부담주긴 싫어=중년세대는 부모의 노후비용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의 노후비용은 자식에게 의존하기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부모의 노후비용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절반이 넘는 비율인 58.54%(82명의 응답자 중 48명)가 '그렇다(40명)' 또는 '매우 그렇다(8명)'라고 답변했다. '보통이다'라고 답변한 응답자는 18명(21.95%), '그렇지 않다' 또는 '매우 그렇지 않다'라고 답변한 응답자는 총 16명(19.51%)이었다. 반면 '본인의 노후비용을 자녀에게 의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응답자 84명 중 72명(85.71%)이 '그렇지 않다(52명)' 또는 '전혀 그렇지 않다(20명)'라고 답변했다. '보통이다'라고 답변한 응답자는 12명(14.29%)이었으며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라고 답변한 응답자는 없었다. 중년세대는 노년층과 자식들 사이에 '낀 세대'로 자신의 노후준비는 뒷전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정인아 기자 jung.ina@koreadaily.com

2017-12-20

연말이 더 쓸쓸한 독거 노인들…보살펴주는 가족 없이 홀로 투병 생활

뉴저지주 파라무스의 뉴브리지메디컬센터(옛 버겐리저널메디컬센터)에 입원해 있는 77세 주순씨는 가족이 그립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치매의 일종인 알츠하이머 환자 주씨는 이 병원 외곽에 자리한 특수병동에 입원해 있다. 방문객은 보안 절차를 거쳐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단절된 곳이다. 지난해 8월 입원한 주씨는 이곳에서도 가장 외로운 환자로 통한다. 그를 찾는 가족조차 없기 때문이다. 독거 노인이자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주씨를 유일하게 찾는 이는 양유환 필그림교회 장로다. 이 교회가 설립한 비영리기관 네이버플러스의 소셜서비스 부서를 맡고 있는 양 장로는 주씨를 매주 방문한다. 화씨 30도를 밑돈 한파가 몰아친 지난 13일 오후 양 장로와 함께 주씨를 만났다. 간호사가 미는 휠체어를 타고 주씨가 병원 면회실로 들어서자 양 장로가 밝게 인사하며 딸기맛 요거트를 내민다. 주씨는 작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고 말하며 시선을 요거트에서 떼지 못한다. 거동이 불편한 주씨를 위해 양 장로가 먹을 수 있게 준비해 준다. 주씨에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 했으나 끝내 기억하지 못했다. 잠시 후 그는 누나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누나 이름은 ‘영심’이라고 했다. 지내기에 어떠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한참을 뜸 들인 후에 “심심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건강을 회복하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니 한참을 생각한 끝에 “하루라도 묵는거다”는 알 수 없는 말만 되뇌었다. 그는 생각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대수술 끝에 극적으로 암 세포 제거 "건강 되찾으면 나 같은 사람 도울 것" 양 장로는 “주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5년 5월이었다. 당시 주씨는 파킨슨병에 걸린 아내를 도와 달라며 네이버플러스 사무실을 찾았다”며 “처음에는 아내를 도왔는데 결국 숨졌다. 아내 간병을 하던 주씨 역시 건강이 악화됐고 홀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양 장로에 따르면 과거 주씨는 자신을 회계사라고 했다. 포트리에는 아내와 살던 집도 있다. 하지만 주씨는 이제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가족만을 그리워 한다. 하지만 병원 간호사가 보여준 주씨의 방명록에는 지난 1년간 양 장로의 이름만 적혀 있었다. 주씨가 유일하게 대화를 하는 때는 양 장로와 함께 간식을 먹고 성경을 읽는 순간이다. 주씨처럼 가족 없이 홀로 생활하는 독거 한인이 적지 않다. 혼자 지내기 때문에 건강을 챙기는 것은 더욱 어렵다. 치매나 뇌졸중 등 거동이나 언행이 힘들어지는 질병이 생기면 기본적인 병원 입원조차 어렵다. 양 장로는 “한 달에 3~4건 정도 위독한 독거 한인들을 돌봐달라는 전화를 받곤 한다”고 말했다. 그 수는 적지만 홀로 병마에 시달리는 한인들을 돕는 이들이 있다. 파라무스의 한국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이일매(67)씨는 지난 2015년 3월 대장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3년 가까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씨의 기적같은 삶은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이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살던 이씨는 지난 2010년 일 관계로 홀로 뉴저지로 왔다. 이후 수년을 일한 뒤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려 할 때쯤 암이라는 병마가 찾아왔다. 이씨의 남편은 오래 전 세상을 떠났고, 외아들은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어 이씨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장암으로 고통받던 이씨는 뉴저지주 홀리네임병원을 찾았다. 이 병원 코리안메디컬프로그램(KMP)은 수술조차 어려웠던 이씨의 치료를 포기하지 않았다. 또 막막한 처지의 이씨를 도와달라며 네이버플러스의 양 장로에게 연락했다. 이후부터 양 장로는 매주 이씨를 찾아가 건강 상태를 살피고 말벗이 돼 주고 있다. 또 보험이 없었던 이씨가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수혜를 받을 수 있게 도왔다. 당초 우려와 달리 항암치료는 효과를 발휘해 이씨는 2년 넘게 삶을 지속했다. 하지만 지난 9월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자라난 암이 내장을 찔러 출혈이 일어난 것. 이 때 이씨를 포기하지 않은 이가 양희곤 홀리네임병원 KMP 메디컬 디렉터다. 암이 내장은 물론, 간과 뼈 등에도 전이돼 수술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양 디렉터는 “환자가 좀 더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며 수술을 결정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뼈에 전이된 암은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암 세포를 이씨의 몸에서 떼어냈다. 수술 후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한 이씨는 걱정보다는 희망이 더 크다. 이씨는 “양로원에서 홀로 투병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 옆에서 찌개라도 떠먹여줬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하지만 병과 싸우며 갖게 된 신앙이 내게 큰 격려가 된다. 주변에도 도움도 많이 받았고, 이제는 나 같은 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서한서 기자 seo.hanseo@koreadaily.com

2017-12-18

"내 장례식 인도하고 와 줄 사람 누구겠나"

늙어감은 죽음과의 거리를 단축한다. 노년층의 시간 흐름은 세상을 떠난다는 의미를 되뇌게 한다. '신심'은 그러한 말년을 파고든다. 한인사회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퓨리서치센터 자료에 따르면 한인 10명 중 7명이 교회에 다닌다. 고령화 시대 속에서 노인의 삶은 종교와 더욱 밀접해졌다. 두 손 모아 소망을 갈구하는 한인 노년층을 들여다봤다. 김영순(82) 할머니에게 목사는 자식보다 더 의지가 되는 존재다. 예배당 입구에서 "권사님, 잘 지내셨지요?"라며 건네는 목사의 한마디가 사뭇 고맙다. 문득 무심한 자식 생각에 코끝이 찡해진다. 6년 전 남편과 사별한 김 할머니에게 교회는 영혼의 위로처다. "요즘 자식들이 누가 늙은 부모 돌보나. 한 달에 두어 번 잠깐 문안 전화하는 정도지. 홀로 남으면 뭐해. 이제는 빨리 남편 만나러 갈 거야. 그래도 교회 가면 목사가 와서 기도도 해주고 한마디씩 해주는 게 왜 이렇게 위로가 되고 고마운지 몰라." 연약한 인간에게 종교는 버팀목이다. 노인에겐 더욱 그렇다. 과거 꽃다운 젊음도 결국 진다. 흐르는 세월에 몸과 마음도 쉽게 무너진다. 교회는 그런 노인들에게 자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노연자(72) 할머니는 "나이 들면서 자꾸만 몸이 아프니까 어느 순간 '내가 점점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가는구나'라는 생각에 한동안 힘들고 우울했다"며 "하지만 교회에 다니고 나서부터는 신앙에 의지하게 되고 천국 소망을 갖게 되니까 그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현재 한인교회들은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대부분 '시니어 사역'을 진행한다. 명칭은 다양하다. '브라보 시니어' '늘푸른나무' '아브라함회' '청춘대학' '실버아카데미' '드림회' 등 노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긍정적 용어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한인 노인들의 필요를 모두 수용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토런스 지역 한 중형교회에서 노인 사역을 담당하는 P목사는 "노인들은 대부분 외로움에 시달리기 때문에 노인 사역은 관심과 사랑이 99%를 차지할 정도로 발품이 드는 사역"이라며 "현실적으로 그들을 모두 돌볼만한 인력도 부족하고 교회 재정도 뒷받침이 안 되기 때문에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그나마 교회에 가서 '소셜 라이프'라도 즐길 정도의 건강이 있다면 다행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한 노인들이 다수다. 정부 보조금에 의지하는 이진섭(70·가명) 할아버지는 "사실 교회라는 데는 벌어놓은 것도 있고 노후가 여유로운 이들에게는 재미있고 즐거운 장소일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노인에게는 적응하기 힘든 곳"이라며 "교회 모임에 참석하다 보면 회비 낼 일도 있고 심방이라도 오는 목사들 식사라도 대접해야 하는데 나처럼 근근이 살아가는 노인에게는 부담되는 일이다 보니 교회 가는 게 꺼려진다"고 전했다. '라이드(ride)' 문제도 노인에게는 심각한 스트레스다. 서영자(73) 할머니는 그래서 더는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 서 할머니는 "교회 셔틀버스 시간에 반드시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예배 후 다른 모임에 참석하기도 힘들고 그때마다 라이드를 구하는 일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어느 순간부터는 몸이 아프니까 교회 출석도 힘들어지고 자연스레 안 가게 됐다"고 씁쓸해 했다. 노인 교육 사역을 담당하는 미션투게더 이정현 목사는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다 해도 '라이드' 문제가 해결돼야 노인들이 올 수 있다"며 현실을 전했다. 그럼에도 부모 마음은 매한가지다. 무심한 자식들의 태도에 때론 섭섭한 마음이 들어도 결국 신(神) 앞에서 두 손을 모으는 이유는 하나다. LA지역 N교회 출석 중인 김순자(81·가명) 할머니에게 몸이 아파도 교회에 가는 이유를 물었다. "결국 내가 죽으면 내 장례 예배를 인도해줄 사람이 목사고, 장례식에 와줄 사람들도 교인들이잖아. 어쩌면 매주 만나는 그들이 자식보다 더 정겹게 느껴져. 그래도 우리 자식들, 손자들 무탈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매일 하나님께 그거 기도해". 노인에게 교회는 바다다. 비록 잡히지 않아도 소망을 낚는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2017-12-14

죽을 때마저 '애들아 미안해'…서글픈 마지막 길

가족 규모가 줄어들고 홀로 사는 노인 수가 급증하면서 가족·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던 장례 절차가 산업의 범위로 들어왔다. 최근에는 웰빙에 이어 '웰 다잉'이 유행처럼 번져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에 대한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LA지역 한인 노인층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한인 노년층 대부분은 죽음이나 장례 절차에 대해 '가족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며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김남순(76) 할머니는 "장례식 본 적은 여러 번 있으니 절차는 대충 알아. 하지만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는 잘 몰라. 아들이 알아서 화장해 주겠지"라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 물어보니까 매장보다 화장이 더 저렴하다고 하데. 그래서 아들한테 그냥 화장해달라고 미리 말 해놨어"라고 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선 어르신도 있었다. 박복자(82·가명) 할머니는 "아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어서 요즘 힘들어. 손녀딸도 대학생이라 한창 돈 많이 쓴대. 그래서 죽더라도 지금 죽으면 안 돼"라고 말했다. 박 할머니는 웰페어를 아껴 자신의 장례비용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이 없는 노인은 죽음에 대해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최모 할아버지(89)는 "주변에서 상조회를 권유하기에 갔더니 나이가 많아서 가입을 못 한대. 별다른 방법이 없는데 어째. 죽으면 경찰이 발견하고 알아서 처리하겠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텅 빈 빈소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70대 이명향(가명) 할머니는 7년 전 남편을 하늘로 보낸 이후 교회를 꾸준히 나가고 있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교회에 자주 나가려고. 신앙도 신앙이지만 교회 사람들 없으면 장례식에 올 사람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 있는 딸은 한국으로 시집갔고, 친인척들도 전부 한국에 살고 있어. 내가 죽으면 당장 와줄 사람은 교회 사람들 밖에 없어"라고 했다. 신에게 기대는 믿음과 내 장례식에 조문객이 올 거라는 믿음이 유독 노년층이 신앙 생활에 열심인 이유로 비쳐졌다. 사실 장례식 조문객 수를 결정하는 요인은 고인과 자녀의 '종교 활동'이다.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면 조문객 수가 많은 편이다. 고인 본인 대신 자녀가 종교활동에 헌신적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오래 종교활동을 했나' 만큼 중요한 문제는 사망 전까지 지속적으로 예배에 참석했는지 여부다.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노인은 마지막까지 미안한 마음을 품고 눈을 감는다. 지난 4일 LA한인타운 저소득층 아파트에서 홀로 사망한 한 70대 노인은 숨지기 며칠 전 이웃에게 "치매에 걸린 것 같다. 몸도 아프다"고 호소했다. 노인은 마지막 월세 259달러를 매니저에게 건네며 한사코 미안하다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 12월 6일자 A-3면> 몇 년 전, 한 70대 노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유서에서 "불미스럽게 생애를 마감할 수밖에 없는 내 처지를 이해해 주게. 늙고 병들고 재산도 날려버린 초라한 독거 생활을 지속할 수가 없었네. 세상사 모든 부분에서 뒤떨어진 낙오자인 나는 더 이상 우매한 삶을 이어갈 의욕을 상실하지 오래 됐네"라고 썼다. 한편, 한인사회에서 장례는 주로 매장·화장 방식으로 이뤄진다. 매장의 경우 묘지 부지·관·식비 등 기타 비용을 포함해 총 2만5000~3만 달러가 소요된다. 화장은 일반화장·참관화장·당일화장·직화장 등 4가지 방식이 있고, 총 비용은 1만 달러 선이다. 내 죽음은 내가 준비해야 하는 '애잔함' 장례 비용 준비 않거나 가족·상조회에 의존 가장 싼 '직화장' 늘어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노년층은 주로 상조회에 가입해 장례 비용을 마련하고 있었다. 상조회는 계모임과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LA한인타운 내에 있는 상조회 10여 곳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미주한인상조회'에는 약 1300명 회원이 가입돼 있다. 회원 자격은 60세 이상 85세 이하 시니어로 제한된다. 처음 가입할 때 가입비 100달러를 내야하고 연회비는 30달러다. 회원이 사망하면 다른 회원으로부터 1인당 10달러씩 걷어 운영비(10%) 공제 후 나머지 금액을 유가족에 전달한다. 사망자가 한꺼번에 많이 발생할 때에는 1인당 최대 80달러까지만 내고 나머지는 상조회에서 대납한다. 한인사회 상조회는 친숙하고 가입이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탈퇴 시 가입비·연회비·이미 지불한 상조금 등 비용을 상환 받을 수 없다. 그 때문에 상조회를 보험처럼 생각한 시니어가 뒤늦게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신중섭(74·가명) 할아버지는 "쥐꼬리만한 웰페어에서 상조금까지 내자니 답답하다. 그래서 상조회를 탈퇴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동안 냈던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이순영(80·가명) 할머니는 "딸에게 장례 비용을 부담하게 하기 싫어 상조회에 가입해볼까 했지만,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를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망설이게 된다"고 전했다. 상조회보다는 덜 친숙하지만, 일부 시니어는 장례 보험으로 죽음을 준비하기도 한다. 장례 보험은 생명 보험의 일종으로 적게는 2만5000달러에서부터 많게는 50만~100만 달러까지 개인 형편과 요구에 따라 보상 한도액을 정할 수 있다. 저축성이 강해 적립금이 불어나기 때문에 실제 수령액은 생존기간에 따라 보상액보다 훨씬 많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장의사 임성혁 장의사는 장례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간 소통'이라고 강조한다. 뒤늦게 부모의 장례 방식을 놓고 자식끼리 다투는 일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온전히 모셔야지"라는 '매장'파와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라는 '화장'파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한다. 임 장의사는 "꺼내기 어려운 주제인 줄은 알지만 미리 장례 방식·비용 등을 상의해야한다"며 "자녀가 많아도 서로 떠넘기거나 부모가 장례 보험 가입된 사실을 몰라 보험금을 수령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임 장의사에 따르면 최근에는 추도식 없이 화장 절차만 거치는 '직화장' 선택 비율이 늘고 있다. 한인사회 경기가 그만큼 좋지 않다는 뜻이다. 임 장의사는 "가장 저렴한(200~300달러 선) 직화장을 하는 한인이 많다"며 "화장 방식을 원해서 화장을 하는 경우는 상관 없으나, 매장을 원하면서도 비용이 부담돼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정인아·김지윤 기자

2017-12-11

노인 2/3 '폴리파머시' 약 많이 주는 '병원 쇼핑'

옛 시절 습관 "약이 최고" 44% 불필요한 약 처방받아 약 먹기위해 밥 먹는 현실 '떼쓰면' 주는 병원도 문제 "쉰 하나에 미국 왔제. 한국서 살 때는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식당서 온종일 일하고도 타이레놀 하나 먹으면 암시랑도 않게 다음날 일 나갔다. 진통제 한 알 딱 먹고 몸이 부서져라 일하기에 바빴지." 만병통치약 맹신 LA다운타운 노인아파트에 사는 이삼호(79) 할머니는 매일 10개가 넘는 알약을 삼킨다. 젊었을 때부터 몸이 아프면 습관처럼 집어 들었던 타이레놀부터 위장약·근육이완제·소화제 등 가지 수도 셀 수 없다. 의사 처방 외에 직접 사먹는 약도 여러 가지다. 혈압약은 2가지 종류를 복용한다. 진통제는 주로 '애드빌(Advil)', 그마저도 잘 듣지 않을 땐 강도가 더 센 '넘버3(No.3)'다. 다량의 약을 한 번에 섭취하면 몸이 망가진다는 걸 할머니도 안다. 그래도 약이 최고다. 할머니는 "몸을 버리든가 말든가. 우선은 아프니까"라고 말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중풍까지 겪은 할머니의 몸은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마저 버겁다고 느낄 만큼 노쇠해졌다. 이 할머니에게 약은 검증되지 않은 에너지인 셈이다. "딸이 약 좀 그만 먹으라 하대. 근데 약 많이 먹고 죽나, 아파서 죽나 매한가지 아니겠나. 아침에 일어나면 아파서 설설 기어 다니는데 지금 당장 안 아픈 게 우선이지." 약 쇼핑 '폴리파머시' 시니어 약 과다 복용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여러 약제를 동시에 복용하는 환자를 뜻하는 '폴리파머시(polypharmacy)'는 미국 의료계의 주요 화두가 됐다. 폴리파머시 대부분은 65세 이상 시니어 층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 거주하는 시니어 인구 가운데 남성은 절반 이상, 여성은 3분의 2 이상이 '폴리파머시'다. 시니어 중 44% 이상이 불필요한 약 한 가지 이상을 처방받고 있다. 폴리파머시 시니어일수록 오히려 건강은 좋지 않다는 노인학회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하루 약 5~9개를 복용하는 시니어는 그보다 적게 약을 복용하는 노인보다 '고혈압·당뇨·심장마비' 등으로 인한 신체쇠약 발생 확률이 2배 이상 높다. 지난달 29일 LA한인타운에 위치한 병원 2곳을 찾아 시니어 약 복용 현황을 알아봤다. 시니어 대부분 평균 4~5가지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수술을 받은 시니어는 2~3가지 약을 추가로 복용했다. 70대 할머니는 "약 많이 주는 병원으로 소문나면 할망구들이 그리로 다 몰려가. 약 많이 주는 병원이 최고지"라고 했다. 한 80대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아도 '어디가 아프시냐' 묻고 증세에 대한 약을 처방하는 게 전부"라며 "약을 먹으면 어지럽고 속이 쓰린 경우가 종종 있어 예전과 달리 약을 가급적 삼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3C메디컬클리닉 김영욱 원장은 "방문 병원이 많고 진료 범위가 넓은 노인 환자는 자연히 복용약도 늘 수밖에 없다. 환자가 많은 약을 복용한다고 해도 질병에 맞는 약을 알맞게 복용한다면 '과용'이라고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부분 의사가 자신의 진료 분야 내에서 적절한 처방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적인 증세 때문에 요구하는 감기약·위장약 등은 처방을 거절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불필요하게 처방받은 약이 쌓여간다면 방문간호사(Home Visit Nurse) 시스템을 이용해 이를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약 과다복용은 위험 시니어가 자주 복용하는 약 중에는 함께 복용했을 때 매우 위험한 조합도 존재한다. 지난해 미국의사협회저널(JAMA) 발표에 따르면 아스피린과 관절염 치료제를 함께 섭취하면 '출혈·위궤양·천공'이 발생할 수 있다. 고혈압 치료제와 비타민 B3를 같이 복용하면 '근육 손상·근력 저하·신부전증' 등을 유발한다. 이 외에도 '섞이면 위험한 폭탄약 조합' 15가지가 해당 논문에서 소개됐다. <본지 2016년 4월 26일자 A-3면> 최영옥(87) 할머니는 "약을 보약처럼 먹는 친구들이 많다"며 "약을 타기 위해 메디케어·메디캘을 남용하는 노인, 환자가 요구하는 약을 일단 주고보는 병원 둘 다 문제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약에 의존하는 시니어에게 '밥'은 약을 먹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빈속에 약을 먹을 수 없으니 억지로라도 밥 한 술 떠먹는다. 영양을 고려한 식단이 가능할 리 없다. 물에 밥을 말아 반찬 몇 가지와 먹는 일이 다반사고 어떤 때는 과일이나 채소로 식사를 대신 한다. 병원을 찾은 한인 할머니의 점심 식단을 물었다. 김모 할머니는 '오이', 최모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김치와 물에 만 밥'이다. 최 할머니가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어떤 때는 약이라는 게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어. 약 때문에 밥 먹으면서 겨우 버티는 삶이잖아. 주변에 약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을 거라고 말하는 노인들도 많아. 근데 그렇게 억지로 버티면서, 참으면서 사는 것도 죽음만큼 버겁지 않겠어…." 김지윤 기자 kim.jiyoon2@koreadaily.com

2017-12-06

"약이라도 먹어야…" 한인 시니어 약복용 실태

메디케어와 메디캘도 녹슨 몸을 새 것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병원과 약국을 방문하는 어르신들에게 어떤 약을 얼마나 복용하고 있는지 물었다. 어르신들은 약이라도 먹어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혈압·당뇨.콜레스테롤…약 6알은 기본 매일 아침 다양한 약을 입안에 털어 넣는 것은 어르신들의 일상이었다. 78세 김명옥(가명) 할머니는 매일 아침 당뇨약 콜레스테롤약 10ml 혈압약을 비롯해 각종 칼슘과 비타민 오메가3를 복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메가3와 비타민D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것을 나머지 비타민은 모두 코스트코에서 구매한다. 김 할머니는 "혹여나 약 챙기는 것을 깜박할까봐 부엌 서랍에 약을 넣어뒀다"고 말했다.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를 한 뒤 약을 챙겨먹는 것이 할머니의 아침 일과다. 할머니는 매일 남편의 약도 챙겨야 한다. 남편은 혈압약 전립선약 장염약 비타민 오메가3를 매일 복용한다. "남편은 약 먹는 것을 귀찮게 여겨. 꼭 챙겨 줘야 해. 약을 안 먹으면 큰일 나니까 잊지 않고 챙기지…." 86세 백성용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로 당뇨약 전립선약 각종 비타민 아스피린 82ml를 매일 복용한다. 당뇨약은 아침 저녁으로 하루 2회 나머지 약들은 아침에만 먹는다. 백 할아버지는 "만성 소화불량이 있어 밥은 적게 먹는데 약 만큼은 꼭 챙겨먹는다"면서 "혈압약이나 당뇨약 콜레스테롤약은 노인이라면 기본적으로 다 먹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습관처럼 병원·약국 찾는 어르신들 병원에서 만난 70대 박 할머니는 바퀴 달린 지팡이를 끌고 약국으로 가는 중이었다. 할머니는 수요일마다 약을 처방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한다고 했다. 고혈압인 할머니는 "이미 혈압약이 집에 있지만 갑자기 속이 더부룩해 위장약을 처방받으러 왔다"고 밝혔다.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아프다는 할머니는 병원에 와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어제는 여기가 아프고 오늘은 저기가 아프고 그래.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병원에 가는 편이 훨씬 나아." 병원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박모씨는 어르신들이 워낙 병원에 자주 와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도 꽤 많다고 전했다. 박씨는 평소에도 어르신들로 붐비는 병원이지만 월요일과 목요일은 특히 더 심하다면서 "병원에 오지 않아서 아파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밝혔다. 어르신들은 녹슨 몸에 기름을 덧칠하듯 약을 계속 찾고 있었다. ▶마음대로 약 끊는 경우도 많아 위험 병원이나 약국의 지시 없이 스스로 약물 복용을 중단하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71세 차종태(가명) 할아버지는 "노인들이 모이기만 하면 '무슨 약이 좋다더라'면서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데 다 부질 없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3개월 전 관절염과 고혈압으로 약을 처방받았으나 지금은 복용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꾸준히 약을 먹었더니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무릎은 약을 먹어도 여전히 아팠기 때문이다. LA 한인타운에 위치한 S약국에 근무하는 한 약사는 "어르신들이 자체적으로 약을 중단하거나 줄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처방을 따르지 않고 약 복용을 중단하면 뇌혈관이 터지거나 혈압이 갑자기 높아지는 '리바운드 현상'이 일어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어르신들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정부나 보험회사들은 약물복용 중단시 발생하는 의료비용을 줄이기 위해 어르신들의 약물 복용 관리를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인아 기자 jung.ina@koreadaily.com

2017-12-04

"늙는 것도 서러운데 폭행에 사기까지"

한인 시니어 범죄 피해율 2배 한인 피해 신고의 10% 차지 전체 시니어 피해는 5% 불과 특히 폭행·신분 도용에 취약 한인노인 체포 절반 불법택시 LA에서 한인 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고 있다. 특히 폭행과 신분 도용 피해가 대다수를 차지해 폭력범죄와 지능범죄 양쪽 유형 모두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LA경찰국(LAPD)의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피해 신고 통계 원시 자료(raw data)를 분석한 결과 65세 이상 한인 시니어 피해자는 719명이었다. 원시 자료에서 피해자 인종은 본인이 밝힌 경우만 기록된다. 또, 노인들이 영어에 미숙한 점을 감안하면 실제 한인 노인 피해 건수는 이보다 더 많다. 한인 시니어 범죄 피해는 매년 증가 추세다. 2010년 92건에서 2016년 129건으로 40% 늘었다. <그래프 참조> 단순 수치보다 주목할 점은 시니어 피해자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7년간 LA시 전역에서 접수된 피해 신고건 142만2608건 중 65세 이상은 7만4944건으로 5.2%였다. 이에 반해 전체 한인 피해자 6567명 중 노인 비율은 10.5%로 2배 높았다. 피해 유형도 우려된다. 폭행 피해가 가장 많다. 159명으로 22%다. <표 참조> 65세 이상 전체 노인 범죄 피해자로 범위를 넓힐 경우 폭행 신고는 7%에 불과하다. 한인 시니어들이 폭행당하는 비율이 3배 이상 더 많다는 뜻이다. 폭행에 이어 한인 노인들의 신분 도용(121명) 피해도 많았다. 전체 시니어 피해 유형에서도 신분 도용은 두 번째였다. 인종과 상관없이 시니어들이 당하기 가장 쉬운 범죄라는 뜻이다. LA한인타운 전담지서인 올림픽경찰서 관계자는 "시니어들은 신분 도용 피해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거나 인지한 뒤에도 대처법을 몰라 피해를 키우는 경우도 많다"고 실태를 전했다. ▶체포되는 시니어들=7년간 65세 이상 한인 43명이 수갑을 찼다. 이 숫자 역시 본인이 한인이라고 밝힌 경우에만 기록한 것이다. 한인 시니어 체포건은 표본이 적어 연도별 증감 추이는 의미가 없다. 다만, 주목을 끄는 점은 체포된 한인 시니어 43명 중 거의 절반인 21명이 불법택시 운전 혐의였다. 영어 미숙 등으로 일할 곳이 마땅찮은 한인 시니어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한인 체포자 중 최고령은 82세로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한 혐의로 붙잡혔다. 범죄를 저지른 한인 시니어 의 대부분(37명)은 남성이지만 여성도 6명 포함됐다. 한편, 한인을 포함한 65세 이상 시니어 체포자는 7년간 1만5230명으로 전체 체포자의 1.4%다. 가장 많이 저지른 범죄는 공공장소에서 만취(3075명), 마약(2840명), 음주 운전(1125명) 순이다.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chung.koohyun@koreadaily.com

2017-11-29

한 달 1000달러로 생존을 고민하다

한인 시니어(65세 이상) 10명 중 6명은 한 달에 1000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한 달 1000달러 미만으로 노인아파트나 하숙집 렌트비를 내고 식비를 해결하고 있다. 본지는 LA한인타운 시니어 9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소득 1000달러 한인 시니어 94명(65세 이상 91명)의 월 소득은 가벼웠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LA에서 살고 있지만 10명 중 6.4명은 월 소득이 1000달러 미만(54명)이라고 답했다. 월 소득 1000~2000달러로 답한 시니어는 16명(19%)으로 두 번째를 차지했다. 월 소득 2000달러 이상은 10명 중 1.6명에 그쳤다. 극소수만이 상대적으로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월 소득 2000~3000달러는 3명, 3000~4000달러 6명, 4000달러 이상 5명으로 집계됐다. 한인 시니어 소득 원천으로 정부 보조금(웰페어, 소셜시큐리티 포함)을 꼽은 비율은 10명 중 6.3명이나 됐다. 한인 시니어 응답자 85명 중 32명(38%)은 웰페어가 수입원이라고 답했다. 소셜시큐리티를 포함한 정부 보조금 수혜자는 21명(25%)이었다. 본인 스스로 경제활동을 벌이는 시니어는 12명(14%)에 그쳤다. 배우자에게 의지하는 시니어는 12명(14%), 자녀가 주는 용돈으로 생활하는 시니어는 8명(9.5%)으로 각각 나타났다. 10%는 하숙집 기거 한인 시니어가 생활을 영유하기 위해서는 노인아파트가 필수였다. 현재 거주지를 묻는 말에 10명 중 3.6명(30명)은 노인아파트라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 84명 중 23명(27%)은 각각 일반아파트와 자가주택에 산다고 답했다. 노인아파트나 자가주택도 없이 하숙집을 전전하는 시니어도 8명(9.5%)이나 됐다. 반면 한인 시니어 70%는 시 정부 보조가 가능한 '섹션8' 정보에 둔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가 올해 하반기 LA시가 섹션8을 재개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응답자 중 섹션8 혜택을 받는 노인은 29%에 그쳤다. 한인 시니어가 부담하는 렌트비는 월 300달러 미만 24명, 300~500달러 14명, 500~700달러 9명, 700~900달러 15명, 900달러 이상 27명으로 집계됐다. 빈곤이 최대 고민 한인 시니어가 체감하는 빈곤은 어느 정도일까. 현재 가장 큰 고민을 묻는 말에 응답자 63명 중 27명(43%)은 '경제문제'를 호소했다. 매달 1000달러 미만의 정부 보조금만으로 연명하는 시니어가 10명 중 6명이나 되다 보니 늘 생계에 시달리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경제문제에 이어 주거문제(17명, 30%)가 두 번째 가장 큰 고민으로 꼽힌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생계문제와 달리 가족문제는 9명, 인간관계(따돌림 등) 6명, 연애문제 2명이었다. 한편 설문조사에 응한 94명 중 31명이 현재 가장 큰 고민을 밝히지 않았다. 한 응답자의 "그걸 다 적어 뭐해"라는 말로 비추어 각종 마음의 아픔으로 추정된다. 결식과 병원행 건강관리에 대체로 신경 쓰는 모습이다. 매주 끼니를 거르는 횟수를 묻는 말에 93명은 0.75회라고 답했다. 94명은 매달 병원을 방문하는 평균 횟수로 1회라고 답했다. 일부 시니어가 메디케어·메디캘을 남용한다는 지적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죽음 준비 '무덤덤' 응답자 94명 중 75세 이상 고령자는 53명이나 됐다. 하지만 한인 시니어는 다가올 죽음에는 무덤덤한 모습이다. 전체 응답자 77명 중 41명(53%)은 자신의 장례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가족에 의존한다는 시니어는 21명(27%), 스스로 상조회나 상조보험에 가입한 시니어는 13명(17%), 친구나 지인에 의존하는 이는 2명 순으로 집계됐다. 한인 시니어가 생각하는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음을 묻는 주관식 말에 "천국이나 주님 곁으로 간다" 등 종교적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밖에 "누구에게나 오는 일" "새로운 자유" "아픈 죽음은 싫다"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아야" "편안하게 잠들고 싶다" 등의 의견이 많았다. 만남·교류 응답자 중 가족과 연락하는 횟수는 주 2.8회, 직접 만나는 횟수는 주 1.6회로 집계됐다. 친구와 연락하는 횟수는 주 2.1회, 만남은 1.8회로 나타났다. 이웃과 연락하고 만나는 횟수도 각각 주 0.9회라고 답했다. 사회참여는 종교단체가 84명 중 42명(50%)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노인회 27명(32%), 사교단체 8명(10%), 동호회 4명(5%), 양로보건센터 3명(4%) 순이었다. 한인 시니어의 주된 여가생활은 TV시청 및 라디오 청취 42명(47%)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독서 16명(18%), 등산 및 산책 13명(14%), 사교활동 13명(14%), 여행 6명(7%) 순이었다. 김형재·정인아 기자 '떠도는' 어르신들 "편히 발 뻗을 곳이 없다" 노인아파트 대기 '10년 이상' 뒷돈 쥐여주고도 사기 당해 하숙집 전전 '고독사'로 몰려 입을 것(의)과 먹을 것(식)은 그래도 낫다. 살 곳(주)이 마땅치 않다. 떠도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저렴한 비용의 노인아파트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 입주하기까지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입주 순서를 앞당기기 위한 뒷돈도 암암리에 오가고 있어 가난한 노인들은 사실상 입주를 포기해야 한다. 갈 곳 없는 홀로 어르신들은 하숙집을 전전하며 빠듯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단칸방에서 홀로 쓸쓸히 죽는 것이 가장 두렵다." 노인아파트는 '하늘의 별따기' LA다운타운에 거주하는 60대 한모씨는 노인아파트에 거주하는 지인이 자신과 함께 매니저를 찾아가면 입주 대기 순서를 앞당길 수 있다고 해 소개비로 1300달러를 건넸다. 지인이 아파트 매니저와의 친분을 강조하며 자신하기에 덜컥 소개비를 낸 것이다. 그러나 지인의 말은 거짓이었다. 결국 한씨는 대기자 명단 맨 끝에 이름을 올렸다. 지인에게 항의했지만 '소개를 해달라기에 해줬을 뿐'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는 "억울하지만 불법적으로 돈을 줬고, 또 현금으로 지불해 증거가 없어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숨 쉬었다. 노인아파트 입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뒷돈을 주면 순서를 앞당길 수 있다는 인식은 여전히 노인사회에 만연돼 있다. '도네이션'으로 불리는 뒷돈거래가 성행하자 기존 거주자들에게도 소개비를 쥐여 주면서 매니저를 설득시켜 달라고 부탁하는 노인들은 물론 중간 브로커 역할을 자청하는 거주자마저 등장하기 시작했다.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입주하려는 통에 헛소문이 돌기도 했다. 70대 김씨는 "최근 같은 노인아파트에 거주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돌아 주변으로부터 '빈 집이 생겼으니 매니저를 소개해 달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면서 "워낙 대기자 수가 많다 보니 헛소문이 생긴 것 같다"고 밝혔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LA한인타운의 경우, 노인아파트에 입주하기까지 보통 10년은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U 노인아파트' 매니저 A씨는 "입주를 기다리고 있는 노인 수가 1000명을 넘어선 반면 한 해에 2~3세대가 비워지기 때문에 대기순서가 뒤쪽에 있는 노인의 경우 사실상 입주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인타운 내 노인아파트 두 군데를 운영하고 있는 민족학교에 따르면 작년 7월 67개의 유닛을 대상으로 입주자를 모집했는데, 총 4120명이 신청했다. 이곳 또한 1년에 많으면 3세대 정도가 비워지는 상황이었다. 대부분 한 번 입주하면 평생 거주하기 때문에 대기자 수에 비해 비워지는 방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황혼에 하숙집 전전 지난달 하숙집에 홀로 살던 최동섭(80대·가명)할아버지는 자신의 방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심한 당뇨를 앓고 있어 주기적으로 정부보조 간병인이 방문하기도 했지만 죽음을 맞이할 땐 혼자였다. 하숙집 주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할아버지 방에 있는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해 딸과 이혼한 아내에게 할아버지의 죽음을 알렸다. 다행히 연락이 닿아 장례절차를 마칠 수 있었지만 텅 빈 방안에서 웅크린 채 숨을 거둔 할아버지의 마지막은 외로웠다. 10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슬하에 자식도 없는 70대 박모씨도 하숙집에 거주하고 있다. 운 좋게 아침과 저녁식사를 챙겨주는 하숙집에 들어왔지만 내 집이 아니기에 눈칫밥을 먹고 산다. 혹시나 집주인과 갈등이 생기면 쫓겨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마다 조심스럽다. 화장실도 다른 세입자와 함께 써야 해서 마음 놓고 이용하기 어렵다. 유일한 수입원인 정부 보조금의 절반 이상을 렌트비로 내고 나면 나머지는 병원비와 약값으로 쓰기에 한끼 외식은 꿈도 꾸기 어렵다. 젊었을 적 그렸던 노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현실에 숨이 막힌다. 노인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한 어르신들은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치솟는 렌트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값싼 하숙집으로 옮겨다니며 지낸다. 민족학교 팀 리는 "노인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한 분들은 보통 600~700달러 정도의 렌트비를 지불하고 있다"면서 "웰페어가 혼자일 경우, 월 900달러가 조금 안되기 때문에 렌트비를 내고 나면 생활비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는 "민족학교에 렌트비로 인해 도움을 요청하는 노인들의 전화만 하루에 30통이 넘게 걸려온다"면서 "고령화로 인해 노인 수는 점점 증가하면서 앞으로는 하숙집을 전전하는 노인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됐다"고 말했다. 정인아 기자 jung.ina@koreadaily.com

2017-11-27

"물질적 효도 보다는 관심 받기 더 원해"

"더 살아 뭐해·내 편이 없어" 연말연시에 우울증 심화 '노인 넋두리' 아닌 '절규' "전화 몇 통으로도 삶 의욕 가족·사회가 노년 자존감 회복에 세심하게 배려해야" 김영순(84) 할머니는 "이제 와서 큰 물질적 효도 바라지도 않아. 전화 몇 번씩 꼬박꼬박 해주고,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만나면 그나마 살아갈 맛이 생겨. 우리 며느리는 한 달에 2~3번 꼭 찾아와서 내 얘기 한두 시간씩 들어줘. 노친네 얘기가 얼마나 지루하겠어? 그래도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나면 속이 후련하고 사는 거 같아"라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미선(71) 할머니가 맞장구를 쳤다. "아들놈이야 바쁘니까 한두 달에 한 번 보면 감사하지. 며느리가 손주 데리고 와서 과일 깎아 먹고 커피 한 잔 하면 든든하고 행복해." 두 할머니는 '사람 냄새'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말했다. 비영리단체 SSG(Special Service for Groups)의 정신건강 상담 및 치료 프로그램인 APTCT의 노인 전담팀에 따르면 서비스 이용자의 60%가 한인이다. APTCT의 제프리 박씨는 "상담을 해보면 거의 모든 한인 시니어가 우울증세를 겪고 있고 죽음,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한인 우울증은 추수감사절과 성탄절, 새해맞이 등 가족이 모이는 연말연시에 심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시니어 우울증 어르신들의 "죽고 싶다"는 말은 괜한 노년의 넋두리가 아니다. 가족과 사회에 외치는 절규다. 상담 전문가는 시니어 우울증을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우선 '더 살아서 뭐하나'라는 희망상실형(Hopeless)이다. 늙고 병들어 타인에게 의존하게 되면서 자아가 약해진다.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 이 증상은 더 심해진다. 막장 속의 컴컴한 소외감. 다음은 '내 편이 없다'는 고립형(Helpless)이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사는 노인이 가장 취약하다. 이들은 위급한 상황에 닥쳤을 때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시니어 우울증은 단순히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질병·외로움·빈곤·소외감 등 신체·정서·경제·사회적 여건이 숙성되지 않으면 이런 악순환은 반복되는 경향을 보인다. 지금의 중장년도 그 늪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한인가정상담소 안현미 상담사는 "시니어 스스로도 행사, 모임에 적극 동참하고 활발한 친교 등 사회활동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며 "무엇보다 가족과 주변 사람은 일주일에 2~3번이라도 꼬박꼬박 전화하거나 방문해 시니어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시니어가 '관심받고 사회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계속 일깨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의학적 기준의 우울증 항목은 ▶슬프고 울고 싶은 감정 ▶평소 흥미를 느꼈던 활동 관심 저하 ▶체중 및 식욕 변화 ▶과한 수면 또는 불면증 ▶무기력증 ▶자존감 저하 및 잦은 죄책감 ▶사고력 및 집중력 감퇴 ▶자살 등 죽음 관심 ▶삶의 의욕 상실이다. LA카운티 정신건강국(LACDMH) 안정영 상담사는 "위 항목에서 5가지 이상 증상이 2주가 넘도록 계속되면 우울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우울증을 겪으면 주변에 도움을 적극 요청하고 초기에 치료해야 자살 등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형재·정인아 기자

2017-11-21

"모든 걸 체념해야 '살 수 있는' 슬픔"

홀로 남은 서러움 '삶 무기력' "배우자 간병할 때가 더 좋아" 중풍·치매 두려운 老-老부부 "몸·정신 힘겨워 학대 경우도" 노년의 텅 빈 집에 홀로 남은 생은 고독만이 가족이다. 먼저 간 '임'과 자식 새끼들이 사뭇치게 그립다. 소리마저 그리워 라디오와 TV를 크게 틀어놓고 있지만, 구석구석 차가운 적막이 웅크리고 있다. 생의 끝자락, 모든 관계와 위로, 사랑을 체념해야 살 수 있다. 아무도 말 걸지 않는 하루는 너무 길다. ◆그 할아버지의 사연 노인아파트는 홀로 남은 시니어가 대부분이다. 'V 노인아파트'는 전체 232세대 중 약 70%가 홀로 사는 시니어다. 할머니들은 같이 밥도 해 먹고 삼삼오오 모여 다니지만 할아버지들에게는 감옥이 따로 없다. 정기영(76·가명) 할아버지는 13년 만에 하숙집을 청산했다고 좋아하신다. 또래 부부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얹혀살면서 그간 눈칫밥도 많이 먹었다. 이혼 후 딸과도 소원해져 하루하루 봉제공장에서 잡일을 하며 삶을 지탱했다. 노인아파트에 당첨됐지만, 따로 집이 생겼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어둠이 내릴 쯤이면 10여 달러 쥐고 카지노 버스에 오른다. 김송(78) 할아버지는 과묵하다. 남들은 양로센터에 나가서 게임도 하지만 "영 귀찮다"고 말한다. "괜히 지 잘났다고 떠드는 X들 때문에 안 간다. 부부가 와서 화목해 보이는 것도 짜증나고, 집에 혼자 있는 게 더 낫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부모를 따라 이민 왔다가 세상에 홀로 남았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자식은 없다"면서 "하루종일 신문을 읽고 종이접기를 하다 보면 하루가 힘겹게 간다"고 나직하게 말했다. "우울하진 않냐고? 뭐 그런 거 없어." 데이비드 한(79) 할아버지는 "5년 전 아내와 사별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최근 두 번 넘어져 걷기가 너무 힘들다. 하와이에서 아내가 죽고 LA로 왔다"면서 "아내가 죽을 때까지 4년을 간병했지만 그때가 좋았다"고 했다. "아침은 과일이나 토마토 한 두 개 먹고, 점심은 정부보조 밥 한끼, 저녁은 라면으로 해결해." ◆그 할머니의 사연 신금례(77) 할머니는 LA한인타운 노인아파트에 혼자 산다. 한국서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두 아들을 키웠다. 아들이 손녀 좀 돌봐달라고 불러 뒤늦게 이민 왔다. 10년 동안 애지중지 돌본 손녀가 다 크자 갈 곳은 노인아파트였다. 양로보건센터에 주 3일 나가지만 속을 나누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가끔 몸을 움직일 뿐이다. 할머니는 "이 많은 사람 중에 내 편 하나 없어 서럽다. 몸도 이제 안 따라준다. 그래도 자식에게 짐은 되기 싫다"면서 텅 빈 아파트로 향했다. 양로보건센터에서 운동을 열심히 하는 김금년(89) 할머니는 귀가 안 들린 지 오래다. 말하는 사람에게 미안해서 그저 고개만 끄덕이곤 하는 경우가 많다. "무릎, 어깨 몸 여기 저기가 쑤시고 아파, 그런데 운동하면 더 오래사는 거 아니야…싫은 데." 요즘 심장판막증이 심해져 의사는 수술을 권했지만 할머니는 듣지 않았다. "이젠 수술대에 눕는 것도 무서워…아픈 대로 살다 가야지." ◆老-老부부 80대 한인 시니어는 음식 해먹기가 고역이다. 혀 감각도 무뎌졌고 무엇보다 손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백순자(80)·백남준(85) 부부는 매일 LA한인타운 순두부 식당을 찾는다. 순자 할머니는 여전히 집안일은 하지만 매번 힘에 부친다. 제대로 된 음식 장만과 살림살이가 힘들다. 정부 보조 '순두부 한끼'가 고맙고 편하단다. "둘 다 늙다보니 이제는 상대에게 뭘 시키지 않는 게 최고"라며 "습관처럼 뭘 시켰다가 '아차'한다. 노부부라는 말이 멋있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상은 힘겨운 노년의 삶이다." 중풍과 치매는 가장 두렵다. 병에 걸린 당사자도 힘들지만 배우자의 몸과 마음도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중풍에 걸린 남편을 수발하는 김모(65) 할머니는 "나는 그래도 이만하면 나은 편"이라고 삶을 긍정했다. 남편은 15년 전 중풍으로 쓰러졌다. 할머니는 "남편은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이니까 고집이 생기고 화도 많이 냈다"면서 "같이 대들면 싸움만 커진다. 늙고 아픈 남편이 늙은 아내를 학대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말했다. 노노부부 중 한 명이라도 치매에 걸리면 수발하는 짝은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치매 환자는 보호자에게 묻고 또 묻는다. 싸움 걸기는 예사고 신경질은 일상이다. 치매 남편을 둔 이모(80대) 할머니는 "자기도 아프니까 신경질을 부리는 것"이라며 "그나마 밥을 차려주면 알아서 먹는다. 먹여주지 않는 게 어디냐"고 위안했다. 치매 친구를 둔 김모(81)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은 채 오래 살면 뭐하나. 사람이 10년이 지나도 죽지는 않고 치매 상태로 똑같아. 자기 몸도 힘든 늙은 남편이 치매 아내를 씻겨주려면 얼마나 힘들겠어"라고 했다. 김형재·정인아 기자

2017-11-16

"손녀딸 보고 싶어 눈이 짓무를 지경이야"

일 년에 자식들 한 번 볼까말까 애들 보고 싶어 '꾀병'부리기도 "집에 틀어박혀있는 게 덜 외로워" "전화라도 해주면 너무 고맙지" 중앙일보는 연말을 앞두고 우리 어르신들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 봤습니다. 어떻게 살고 계시고, 무슨 생각을 하시고, 그 분들이 느끼는 고민과 외로움, 행복 정도는 어떤지를 직접 물었습니다. 한인 노년층의 실제 삶을 조명합니다. 노인의 현재는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보름 앞둔 지난 8일 LA한인타운 한 노인아파트는 적막했다. 아파트 입구 문 옆에 붙어있는 거주자 안내판을 봤다. 'Kim' 'Lee' 'Park' 등 익숙한 성씨로 한인 시니어들이 대부분 거주했다. 출입문 앞에서 지팡이를 짚고 서성거리던 한 할머니가 "젊은 사람이 여긴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취재하러 왔다고 답하자 "우리 같은 늙은이들을 취재해서 뭐 하려고. 재미도 없을 텐데…"라며 로비로 안내했다. 발소리가 메아리로 울려 퍼질 정도로 조용했다. 간간이 들리는 말소리와 기침 소리, 지팡이 끄는 소리만 들렸다. 로비에는 어르신 서너 명이 둘러앉아 있었다. 대화는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젊은 양반이 여긴 왜 왔느냐"는 질문을 또 받았다. 이곳에서 젊은 사람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외계인이었다. "추수감사절이랑 연말에 계획은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평소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겠지"라고 답했다. 대답에는 깊은 한숨이 섞여 있었다. 80대 이진순(가명) 할머니는 "연말이라고 특별할 게 있나. 그냥 평소처럼 혼자 보내야지. 자식들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바쁘니까 먼저 연락하기 눈치 보여. 전화라도 해주면 좋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 할머니는 얼마 전 타주에 사는 손녀딸이 보고 싶어 아들 집에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아들은 먹고살기 바빠 올해는 엄마를 만나러 오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섭섭해도 어쩌겠어. 괜히 신경 쓰이게 하지 말아야지." 익숙한 듯 말하는 할머니의 미간이 살짝 접혔다. 로비에 계신 분들께 자식들과 얼마나 자주 왕래하는지 묻자 일제히 한 할머니를 가리키며 "저 이 빼고 거의 다 못보고 산다"고 입을 모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들이 아파트로 찾아오는 70대 김금례(가명)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대부분 1년에 한두 번 정도 자식들과 만난다고 답했다. "쓰러지거나 병원에 들어갈 때, 병원에서 나왔을 때 며칠 빼고는 보기 힘들어. 꾀병을 부리는 노친네들도 있다니까." 그러자 다른 할머니가 툭 한마디 하신다. "남의 집 화목한 모습을 보면 내 인생이 덧없게 느껴져. 홀로 지내야 하는 설이나 추석, 크리스마스면 유난히 더 심해. 아예 그런 생각 안 하려고 집에만 틀어박히는 게 낫지." 어르신들은 빠듯한 살림을 꾸리는 자식들에게 외로움을 호소하는 것은 사치이자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여겼다. 외로운 마음이 들 때마다 자식한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꾹꾹 참는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 증상을 보이는 시니어들은 정부보조 간병인에게만 의존하고 있다. 70대 송모씨는 "그래도 나처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근처에 바람이라도 쐬러 갈 수 있지만 치매에 걸렸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간병인 없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기 어렵다. 아들딸과 손주들은 더 멀어지고…"라면서 "옆집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해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인생의 마지막을 보낸다"고 전했다. 노인아파트는 '이별'이 흔하고 자연스러운 곳이다. 김광조(78·가명) 할아버지는 "이곳에 살다 보면 구급차가 자주 오는 걸 볼 수 있어. 가스레인지 위에 주전자를 올려두고 깜박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라고 말하면서 "구급차가 몇 번 왔다 갔다 하고, 그러다가 어떤 노인이 안 보이면 그냥 '아, 돌아가셨구나' 짐작하는 거지 뭐…"라고 말했다. 구연자(69·가명) 할머니는 죽음보다 자신이 죽었을 때 '누가 나를 위해 울어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더욱 두렵다고 했다. 할머니는 "남보다 못한 취급을 하는 아들내외를 보면 내가 죽어도 장례식 절차만 빨리 해치우고 끝낼 것 같다"면서 "젊은 시절 홀로 아들을 키우며 고생했던 날들이 허무하게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노인아파트 관리자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 매니저 이모씨는 "현재 어르신 10명 정도가 건강상의 문제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라고 전했다. 이어 "안타까운 마음에 찾아뵙고 말동무를 해드리고 싶을 때가 많지만 사생활 침해 문제도 있고 해서 개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외로워도 외로운 줄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아요. 외로움과 너무 오래 사셨기 때문에 외로움을 못 느끼시는 거 같아요." 취재를 마치고 나갈 채비를 하자 함께 대화를 나눴던 어르신들께서 "고맙다"고 말했다. 낯선 젊은이가 찾아와 침묵을 깨고 말동무가 돼준 것이 고맙다고 했다. 노인아파트 로비에 있는 TV에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해 온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의 광고가 방영되고 있었다. "손녀딸이 보고 싶어 눈이 짓무를 지경"이라는 할머니와 "좀 전화라도 자주 해주지"라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텅빈 로비를 울렸다. 정인아 기자 jung.ina@koreadaily.com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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